편식

enzoy : 자작이네-_-; : 2000/01/23 04:05
(2000년도에 썼던 글, 실제 대화내용을 기억나는대로 쓴것.)

참 오랜만에 먹는 "만족스런 스테이크"였다. 난 시즐러에서 어떤 사람에게 저녁을 사주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사주기로 약속했던 식사대접을 1년 가까이 서로 일정이 안맞아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사게 된 것이었다. 시즐러엔 참 오랜만에 와보는 것이었다. 이정도의 스테이크라면 조촐한 내 수준에서는 최상급이다. 아주 맛있고 촉감도 좋다. ^^;;;

그녀도 스테이크에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스테이크를 먹는 것을 관전(?)하다가 어렵지 않게 그녀가 당근을 먹지 않는 스타일이란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당근을 안먹는 편인가요?"

그녀는 눈을 굴리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네에... 네. 그래요. 당근 잘 안 먹어요."

"그럼, 콩은요?"

"핫핫... 예리하시군요. ^^;;; 콩도 머.. 좋아하진 않아요."

"그럼... 콩 섞인 밥은 다 골라내고 드세요? ^^;;;"

"뭐 그건, 그때 기분따라 틀려요. 골라내는게 귀찮은 날엔 그냥 먹고... 먹기 싫은 감정이 더한 날엔 골라내고 먹죠. 뭐, 그것보다... 콩밥을 먹을 기회라는게 별로 많이 생기질 않자나요."

난 눈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콩이나 당근은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아요. 예를 들면... 음, 당근농장 쥬스도 잘 마시고요... 콩도 칠리라이스에 섞여 나오는 것이나 짜장면의 완두콩이나 그린자이언트, 레드빈 통조림 같은건... 먹으라면 먹어요. 잘 먹는 편이라고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잘먹는 편은 아니고 먹으라면 먹는 편 정도인가보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린 자이안트는 옥수수 통조림이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도 잠시...). 그녀는 증명하고 싶다는 듯이 접시 한쪽으로 치워 모아둔 당근을 하나 포크로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곤 당근을 씹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싫어하는건 오이에요."

"오이요?"

"네. 오이요. 최악이죠."

난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이를 싫어한다는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정말로 혐오 수준으로 오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절대로 먹어줄 수 없어요. 오이! 햄버거에 낀 것도 전 다 빼 버려요. 솔직히, 아주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오이의 맛은 형편없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피클은 어때요? 드시나요?"

"아! 그 얘기하려고 했어요. 피클도 마찬가지고 오이지도 역시. 아무리 가공을 해도 오이는 먹어줄 수 없어요. 최악."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전에도 본적이 있지만... "오이의 맛이 객관적으로 형편없다" 라는 표현은 참 참신한 얘기같이 들렸다.

"그렇게 오이를 싫어하신다니 참 오이가 불쌍하군요. -_-;;; 그런데 저는 당신보다 훨씬 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알고 있어요."

"글쎄요. 저는 오이를 싫어하는 것에 있어서는 상당히 자신 있는데. ^^. 저보다 더하다고요? 확신할 수 있으세요?"

"뭐.. 확신이 가요. 그 사람은 오이가 싫기 때문에 오이와 느낌이 비슷한 참외도 싫어하고, 심지어는 수박까지도 비슷하다고 싫어했었다고 하더라구요."

"헉, 정말 저보다 더한 사람이군요? 참외랑 수박이 싫다니... 음...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참외도 수박도 충분히 오이랑 비슷한거 같아요. 참외는 원래 오이쟎아요~ 참오이!. 어느 정도 동감이 가는데... 그래도 전 참외랑 수박까지 싫어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걸요~. 너무 좋지 않아요 수박?"

난 웃으며 끄덕였다. 정말 한여름에 수박만한 과일은 없는 것 같다. 맛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시원함이나 만족감으로 보나... 암튼, 그녀가 콩, 당근, 오이를 안 먹는 타입이라는 사실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상당히 건강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뭐든 잘 먹을거라는 인상을 받고 있었던가보다.

"그러고보니 수박도 참외도 비교적 벌레가 없는 과일들이로군요. 당신 표현대로 객관적으로 맛이 없기 때문일까요? ^^;;;"

"하핫... 그런가요? 하지만 참외랑 수박은 전 객관적으로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을 하고선 생각해보니 나는 참외랑 수박 안에 벌레를 본적은 없지만 실제로도 벌레가 안끼는 과일이 맞을런지 자신이 없었다. 도시에서 자라서 이런 것들을 잘 모른다.

"콩, 당근, 오이... 그리고 또 가리는 음식 있어요?"

"몇가지 더 있죠... 버섯, 족발, 순대... 음음음.... 한 열가지 정도에요. 음식 안가리세요? 제가 보기엔 많이 가릴 것 같은데..."

난 음식을 가리거나 하는 편은 아니고 보이기보다는 음식을 잘먹는 편이다. 하지만 대게 다들 나를 첫인상에서 그렇게 봐주지는 않는다.

"가리는 음식이라... 참 미묘한 문제네요. 일단 대답하자면, 전 음식 전혀 안가리고 잘 먹어요. 그리고 보기보다는 잘 먹는 편이죠. 소화도 잘 하고요."

"일단이라는 꼬리표는 왜 붙이는걸까요?"

"심지어 저는 남들이 비위 등등의 이유로 절대 못먹는 음식도 꿀떡꿀떡 잘 먹어요. 예를 들어 에일리언 잇몸을 떼 놓은 것 같은 덮밥이라든지."

"에일리언이요??"

밥을 먹는 도중에 에일리언같은 단어를 쓰는 것은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들기 쉽지만... 그녀는 그렇게 상식의 틀에 갇힌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런 단어가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녀는 잠시 그 형상을 상상해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상세히 묘사해도 될 것 같아는 판단아래 말을 이어 나갔다.

"일본에 갔을 때 어느 지방에 가서 그 지방 특산의 규동(덮밥)을 먹은 적이 있지요. 밥을 덮은 재료는 걸쭉한 밤색의 물체인데 어떤 나무의 뿌리를 어떻게 가공한거라는 얘길 들은 것 같아요. 아주 끈적질척한 진이 잔뜩 묻어나와 젓가락에 여러갈래의 실을 만들지요..."

"그런 것도 전혀 비위상하지 않고 잘 먹을 수 있단 말씀이세요?"

"네... 그건 맛도 또한 익숙해지기 전엔 먹기 힘든 종류였는데 전 비위도 안 상하고 잘 먹었어요. 밥을 산 사람도 이 음식을 첫번에 그렇게 잘 먹는 사람은 난생 처음 본다고 했어요. 음... 암튼, 전공 때문에 영향을 받은 건지 몰라도 저는 비위가 상당히 강한 편인가봐요. 어떨땐 나에게 비위의 개념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반짝이는 눈을 위쪽으로 굴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 얘길 하려고 아까 "일단" 이라는 표현을 쓰셨나요?"

"아니요. 실은 저도 가리는 음식이 세가지가 있어서 그런 표현을 썼어요."

"세가지라? 뭐뭐뭐에요?"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갈등을 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갈등을 하곤 한다. 과연 내 얘기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말을 하는게 나을까 안하는게 나을까. 그런데 그녀는 나의 갈등을 눈치채 버렸다.

"미리 경고하는데... 저는 이렇게 얘기할 듯한 분위기로 궁금하게 만들고서는 말 안하고 넘어가는건 절대 용서 못해요."

그녀의 앞지르기 화법은 참 재미있었다.

"첫번째는... 삶은 양배추에요."

"삶은 양배추요?"

"네. 삶은 양배추. 불란서식 요리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음, 불란서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알고보면 여기저기 잘 들어가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잡채라든지... 소시지볶음이라든지... 애채를 채썰어서 넣는 그 모든 것에.. 심지어는 떡볶이까지."

"그렇지요. 맞아요. 어디에나 잘 들어가지요. 그리고 전 잘 먹어요. 별 감정없이 잘 먹지요. 대게의 경우 다른 맛과 섞여 있기도 하고."

"그런데 뭘 싫어한다는 거지요?"

"양배추를 덩어리 그대로 썩둑 잘라서... 그 통채로 버터와 함께 삶은 요리를 본적 있나요?"

"아뇨.. 음.. 아니다, 어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

"다른 맛이 전혀 없이 순수히 양배추만을 삶은 그 맛... 전 그걸 정말 싫어해요. 아주 비리비리하고 느끼하고 역겹지요. 어릴 때 그 음식을 먹기를 강요 당했었어요. 그 요리를 아버지가 아주 좋아했죠. 식구들은 다들 무난히 잘 먹었던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유독 나만 그것을 못먹는다고 나만 유별나다고 구박하며 먹으라고 강요했죠. 전 구역질을 참으며 혼나가며 먹어야 했어요."

"다들 어릴 때 그런 면모는 하나 둘 씩 가지고 있지요. 저도 콩밥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전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내가 삶은 양배추를 싫어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곤 해요. 그 맛은 정말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별로거든요."

"하긴 저도 여러 음식에 들어있는 삶은 양배추 토막들.. 그 자체의 맛은 썩 내키지 않아요. 다른 맛이랑 어우러져 먹을만 한거겠죠."

그녀는 화술에 능한 것 같았다. 맞장구를 치며 상대방이 말을 이어 나가도록 독려하는 찬성구들이 진심인지 아닌지 판별하기가 힘들었다.

"암튼, 버터로 삶은 커다란 양배추 덩어리는 지금의 제 생활에 전혀 영향이 없죠. 제가 그 요리를 못본지는 10년도 더 넘었을 거에요."

"두번째는 뭐에요?"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초롱한 눈으로 얘기를 독촉했다. 다행이라고 느꼈다. 솔직히 이것은 상식적으로는 상당히 해괘한 화제이기 때문에.

"두번째는 카레라이스에요."

"카레라이스라고요? 어? 맛있지 않나요? 전 좋아하는데."

"맞아요 맛있지요. -_-;;; 무난히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요리인 것 같아요. 카레를 싫어하는 사람은 콩이나 당근,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 비교도 안되게 적겠지요."

"어떤 면에서 카레가 싫어요?"

"뭐랄까... 질척하고... 꼬들한 밥도 진밥으로 만들어 버리고.. 저는 진밥보다는 꼬들꼬들한 밥을 좋아해요. 뜨거운 진밥은 좀 쩔쩔매면서 먹지요."

"고양이혀로군요"

"역시 그 표현을 쓰는군요 ^^;;; 그런데 아마 무엇보다도 제가 카레를 싫어하는 이유는 원래 카레의 맛이 아주 좋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원래 카레라뇨? 카레도 진짜 가짜가 있나요?"

"원래 인도에서 먹는 원래 방식대로의 카레요. 아주 맛있지요."

"많이 달라요?"

"저는 인스턴트로 가루로 대량생산되어 세상에 뿌려지는... 소위 일본식 카레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달라요. 거의 뭐... 이름만 같은 두 별개의 음식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흠... ^^;;;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사이다에 관한 얘기가 떠오르네요. 사이다라는 이름은 원래 미국 북부와 캐나다 쪽의 과일 발효주의 이름이래잖아요. 한국에서는 청량음료로 통하지만."

지방에 대한 얘기는 잘 모르겠지만, 난 사이다가 "사과주"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암튼, 어딘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적절한 비유는 아니란 생각을 감추며 나는 말을 이었다.

"전 선택권 없이 카레가 식사로 나오면 잘 먹긴 하지만 선택의 갈래가 있을 때 카레를 선택하지는 않아요."

"카레를 싫어하신다라. 푸훗. ^^;;"

"근데 실은 세번째가 아주 가관이에요.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다들 여기서 뒤집어지곤 하지요."

"뭐길래요?"

"오렌지 쥬스랍니다. -_-;;;"

그녀는 처음엔 풋하고 웃더니 이내 까르르거리며 크게 웃었다. 한참을 자지러지게 웃다가 조절할 수 없는 웃음을 겨우겨우 거두며 간신히 한마디 반말을 뱉었다.

"참 사람 이상해~ 파하하핫~"

"우씨~ 그렇게 말할줄 알았어. ^^;;;"

숨을 고른 그녀는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는 말을 이었다.

"오렌지 쥬스를 싫어한다니... 세상에 그거 싫어하는 사람도 다 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음식을 안가린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요? ^^"

"전 오렌지를 아주 좋아해요. 제일 좋아한다고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오렌지쥬스는 싫어요."

"푸하핫.. 그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에요?"

"오렌지는 정말로 기가막히는 맛이에요. 하느님의 선물이지요. 저는 오렌지를 짜서 마시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짜먹기에는 한국에선 오렌지가 꽤 비싸다는게 문제지만.
하지만! 오렌지 쥬스의 맛에는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요?"

"사과쥬스에서도 사과맛이 나고 포도쥬스에서도 포도맛이 나고 배맛 음료수, 토마토쥬스, 딸기 쥬스 등등등은 모두 제 맛이 나는데... 오렌지 쥬스만은 오렌지의 맛이 나질 않지요. 저는 오렌지쥬스에서 나는 맛을 도저히 오렌지의 맛이라고 생각해 줄 수가 없어요. 어떻게 그 좋은 맛을 그렇게 망쳐 놓을 수가 있는지? 델몬트건 선키스트건 모두 마찬가지에요. 실제로 재료로 오렌지를 쓴 것이 맞는가하는 말도 안되는 의문을 품곤 한다니까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왜 그걸 오렌지의 맛이라고 끄덕이며 마시고 있는건지... 한때는 우리나라의 오렌지쥬스 맛만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외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더군요. 선키스트.. 델몬트... 밖에서도 맛이 똑같더라구요."

"오렌지에 대한 애착이 강하신가봐요? 저도 오렌지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오렌지 쥬스의 맛.. 무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 듣고 생각해보니 다소 원래 오렌지 맛보다 쓰고 신 것 같기도 하고... 음... 하지만 그래도 오렌지 쥬스는 맛있어요. ^^"

"뭐... 카레와 마찬가지로 저는 오렌지쥬스가 대접되어 나오면 무난히 잘 마셔요. 하지만 선택의 갈래가 있을 때에 오렌지 쥬스를 선택하진 않죠..."

"그래서.. 싫어하는 음식이 그렇게 세가지라고요... 셋 다 아주 흔한거잖아요. 당신은 감히 "난 음식을 가리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는거라구요."

"그렇기도 하지요. 저는 콩, 오이, 당근, 버섯, 족발 등등등 모든 것을 안가리고 잘 먹는데도 불구하고요..."

"제 친구가 생각나네요. 진실게임을 하다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지요. 술래가 되어서 이렇게 말하는거에요 글쎄. 난 어떤 질문이던 솔직하게 진실되게 대답을 잘 해준다. 하지만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곤란한 사연이 있으니 딱 세가지 주제에 관해서만은 묻지 말아달라."

"어떤 세가지요?"

"글쎄 그 세가지라는게... 가족에 대한 것, 연애에 대한 것, 성에 관한 것. 이라는 거에요. 까르르~~ 도대체 진실게임에서 뭘 물어보라는 건지...하하핫... 정말 웃기지 않아요?"

"정말 웃기네요.. 하하.. 이런, 하지만 지금 그것이 저에게 빗대어지고 있는거잖아요?"

"아뇨.. 정확히 똑같다고 비꼬려고 꺼낸 얘긴 아니에요. 상황이 다소 비슷한 것 같아서 떠오르길래 말씀드린 것이죠. ^^;;;"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비운 잔에 오렌지쥬스를 리필했다.

솔직히... 나의 조촐한 소원 하나는 이 세상에 흔한 모든 오렌지 쥬스가... 오렌지를 짠 그 맛과 같게 되는 것이다...

__Enzoy____


SnakeFoot : 102번 친구가 이글을 읽고서 그 양배추가 슈크르트가 아니겠냐고 말해줬다. 독일에서 거의 김치 수준인 것으로서 "슈크르트"라는 요리가 있다고. 그래서 조금 더 알아보았더니 :: [choucroute. 알자스 지방의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요리. 향을 위해 케러웨이씨드 등 스파이스를 넣기도 하며, 이것을 햄&소시지에 넣어 찌는 요리를 많이 한다] 아.. 그 소시지와 함께 나오는 절인 양배추를 슈크르트라고 하는군. 흠, 근데 내가 말했던 푹찐 버터양배추와는 조금 틀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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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함

enzoy : 자작이네-_-; : 1999/02/23 04:05
(99년에 썼던 글. 통신친구 MR과 나눈 대화.)

나우누리에 접속해 친구인 동갑 여자애랑 쪽지를 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넌 어떤때 허전해?"

잠시 당황스러웠고, 뭐가 떠오르는 것 마저 없어서

"푸허덕~? 갑자기 무슨 마랴?"

라고 치고는 한참을 생각해야했다. 허전함이라...

"그냥.. 누군가가 허전하다는 글을 써놓은걸 보다가, 한번 물어봤어."

"허전함? 움... 아까 너하고 쪽지하다가 마지막에 보낸 쪽지 후에 니가 대답이 없을 때라든지.. ^^;;;;"

"^^ 그땐 그 말 듣고 별 할말이 없었어. --+++ "

(갑자기 이아가 심각하걸 물어보고 그러네... =_=)
"허전함이라... 사람에 대한 허전함? 아니면 상황에 대한 허전함?"

"그냥.. 허전함."

"머... 나도 감정있는 사람이니까... 흔한 예를 들어 종로 거리를 가득 매운 연인 쌍쌍들을 본다든지... 아니면 남들은 척척 빨리빨리 일을 잘 해 내는데 내가 아는게 적어서 일을 빨리 못한다든지 할때라든지... 그럴때 허전함 느끼지... (넘 상투적인가?)"

"그래. 글쿠나. 의외네? 넌 연애같은거 상관 안 하자나."

"음.. 그건... 다만 그 허전함이 나에게 별 상관이 없다고 해야하나? 그럼 넌? 어떤 때 허전함을 느껴?"

"나? 우움...? 허전함이라? 그런거 별로 안느껴."

"안느낀다고? 정말?"

"그런것 같아."

"그래... 맞다. 이런거 아니? 취미말야. 내 취미가 뭐게?"

"니 취미? 몰라. 뭐야??"

"난 취미가 없어."

"말도 안되. 어떻게 취미가 없을 수 있어.. =_="

"그래. 그거야. 취미는 마치 성별이나 혈액형과도 같은 것 같아. 취미가 없다고 하면 다들 마치 성별이나 혈액형이 없다고 대답을 한 사람이라도 보는 듯 괴물 취급을 해."

"-_-++++"

"그게 아니라면 아주 재미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그렇지? 그래서 취미가 없는 나는 취미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순간 당황하며 헤메게 되지. 빨리 적절히 하나를 지어내야만 하는거야. 게다가 그 사람한테 무엇을 취미로 대었었던지를 기억해 두어야만하고. 뭐, 날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한테는 솔직히 취미가 없다고 지금처럼 말을 하지만. ^^;;;"

"그게 허전함이랑 뭔 상관이야?"

"나도 허전함을 안느껴. 너와 같은 것 같아."

"???"

"난 쉽게 허전함을 안 느껴. 어찌보면, 난 그렇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해. 그런데 허전함이라는 감정은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것 같이 되어 있잖아.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만 되는 듯이. 여기저기에서 강조되는 것이 허전함이잖아. 현대사회인의 필수 감정이라는 듯이. 그래서 난 허전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니오"라고 답하면 마치 숨쉬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한 괴물 취급을 받게 될까봐 말을 돌려 대답을 지어내는 것같아. 그래. 대답 다시 할께. 난 쉽게 허전하지 않아."

"그래..."

"... ?_?;;;;"

"나 졸려... 자야겠다."

(넌 맨날 내가 쫌만 말을 돌리면 졸린대라...=_=)
"그으래... 잘자라... 다메바바."

난 상대방을 졸리게 만드는데에는 뭐가 있나보다. 크흑.. 하지만... 열심히 정성들여 말하는데 결론적으로 상대방을 졸게 만들었을 뿐일때의 그 허탈함이란...

그게.. 바루 그 허전함??

__Enzoy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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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 탐사기

enzoy : 자작이네-_-; : 1999/01/23 04:05

여행을 갔다가 왔던 어느 다음날...
여독에 취해 잠에 푹 빠졌다가 대낮에 잠에서 깨어... 뚱하니 있다가...

괜히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나의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러니까, 아마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옆에서 봤으면 내가 내 가방이 아닌 남의 가방을 호기심으로 뒤적거리는 듯이 느껴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방을 메고 다닌지 3년쯤 되어가는것 같다.
나는 어디엘 가나 거의 항상 가방을 메고 다니기 때문에 이 가방은 나의 하나의 인상으로 박혀가는 것 같다.. "어? 야... 왜 오늘은 가방이 없어??" 라는 말도 듣고.... -_-;;;

그런데 생각해보면...
난 지난 1년도 넘게 가방의 작은 여러 주머니들을 신경써본 일이 없는 것이다. 처음 가방을 살 때는 구석구석 주머니가 여러개 있어 맘에 든다며 사놓고는... 실상 가방을 씀에 있어서는 가장 큰 가방 공간에만 물건들을 잔뜩 넣고 다닐 뿐이지 그 살 때 좋아했던 주머니들을 쓰지를 않게된다. 마치... 가방의 앞, 옆, 옆, 뒤에 달린 주머니들은 나에게 없는 공간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자나마자 가방이 눈에 들어온 그 어느날... 문득 그 주머니들을 한번 뒤져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 가방에 달린 이런저런 주머니들을....

'과연 어떤 물건들이 들어있을까?' 하며...


일단 앞쪽의 비교적 큰 주머니.

손을 쑥 넣으니 꼬마 드라이버가 잡힌다. 연장통도 아닌데 왠 연장이 나오는건지... 그래도 이것은 드라이버가 있을리 만무한 상황에 드라이버가 필요할 때 꽤 요긴하게 몇 번 쓴 기억이 있다.

드라이버 다음엔 헤어밴드가 나온다. 보풀보풀한 털의 느낌이 부드러운 짙은 남색의 것인데... 예전에 머리가 길 적에, 갑자기 나이트에 가게 될 때를 대비해 넣어두었던 것이었다.
뒤적뒤적.. 그 다음엔 삐삐끈이라고 사료되는 무엇인가가 나온다. 악세사리 부분은 어디로 유실되었는지 플라스틱 용수철 끈 부분만 남아있다.
삐삐끈을 휴지통에 던져 넣고 또 손을 넣으니 스커시할 때 쓰려고 한 운동용 낫쏘 하드헤어밴드가 나온다. 여기 있었구나.. 이걸 어디다 둔지 몰라서 한참 다른 곳을 뒤적이던 때가 있었다.
해어밴드 밑에 또 하나의 헤어밴드가 나온다. 아까것과 마찬가지인 불시 나이트용 헤어밴드이다. 이번엔 새하얀색. 오랜 세월 주머니에 있어서 그런지 때가 좀 꼈다. 우씨.. 해어밴드가 도돼췌 몇 개인지.. 많기도 하다. 다 머리 길던 시절의 얘기지... 짧게 깎아 버린 지금으로선 아무 소용이 없다.

암튼 계속 뒤져본다. 앞주머니에선 동짜몽주머니도 아닌게 물건이 계속 나온다.
서울랜드 할인권이 나온다. 97년 봄것인가부다. =_=;;;;; 2년이 지난 티켓이라니. 97년도라면 이 가방을 산 연도가 아닌가 싶다.
이젠 더 물건이 없나 싶은 타이밍에 바닥에 깔린 나사못과 하드디스크 쩜퍼들이 사금채에 걸리듯 마구 나온다. 우어어~~ 난 왜 가방에까지 이런게 있는건지.

그리곤 껌종이가 몇개 더 나온다. -_-;;;; 이건 거의 뭐 이 주머니가 쓰레기통과 사뭇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바이다.

앞주머니의 내용은 이정도에서 그쳐졌다. 이건 미지의 세계다. 내 주머니가 아닌가보다. 언제 어디서 들어간건지 전혀 아무런 기억도 안나는 물건들로 가득차있다.


이제 앞쪽을 떠나서 옆주머니.

옆주머니의 입구는 일단 여행용 티슈 봉다리로 막혀 있었다. 이 티슈들은 색깔도 얄딱꾸리한게 꽤 오래된 세월과 관록이 느껴진다. ^^;;;; 휴지를 한장 꺼내려 하니 모두가 담합하여 뭉쳐서 나온다. 한덩어리다. 누구보고 비누라 그러면 아마 곧짝 믿어 버릴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티슈봉다리를 꺼내 돌파구를 찾고 계속 들어가보니 파란색 랜서 볼펜이 나온다. 내가 한때 좋아하며 잘 썼던 볼펜이다. 꺼내어 볼펜꽂이에 꽂은 후 계속 뒤지니 파란색 랜서가 또 나온다. -_-;;; 뒤적뒤적... 파란색 랜서가 또 나온다. 우어어~~ 도대체 몇 개가 있는건지...
난 파란색 볼팬은 잘 쓰지도 않을뿐더러 사본적도 별루 없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 이게 웨에 세 개씩이나 나올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볼펜을 쥐고 부르르 떨다가 탐색을 속행했다. 손수건이 나온다. 파란색 손수건. 내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척 깔끔떨던 때가 있었던가부다. (확실히 그런 때가 있었는지 기억은 잘 안난다.)
원채 작은 옆주머니에는 이제 바닥이 드러난다. 주머니 바닥에서 여자애들이 쓰는 머리 똑딱핀이 나온다.. -_- 이건 또 뭔지... 웨에 여기 들어 있는 것인지...


이제 그 반대쪽 옆 주머니.

일단 처음에 담배가 나온다.. 이건 도데체 얼마나 묶은 담배일지... 비에 맞고 마르고를 반복해서인지 담배 전체가 노래졌다. 한대 태워볼까하다가 인체에 유독한 가스가 나올 것만 같은 형상에 쫄아서 그만둔다.

뒤적뒤적... 담배 바로 아래쪽에서는 쪽지가 나온다. 비에 젖어서 잘 안보이는데, 대강 읽어보자면... 연락달라는 간단한 문장이 적힌 삐삐 번호다. 이런거 받은적 내 기억엔 전혀 없다. -_-;;;; 남자일지 여자일지조차도 전혀 모르겠다... '혹시 누가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 옆에 서있다가 나에게 반해서 넣고 간건가?'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본다. 푸하하 이런 궁상맞은 상상이라니... 관두자.

라고 하면서도 전화로 삐삐를 쳐보고 있는 나 (이.. 이건.. 궁상의 극치로군...) 근데.. 수화기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여인의 음성...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우허허. 뻔히 결번일 것을 예상하고 걍 재미삼아 눌러봤다고 나 자신에게 우겨본다.

뒤적뒤적 계속 주머니를 뒤진다. 바닥에서는 팬시우산의 껍떼기가 나온다. 언젠가 선물받았던 아주 예쁜 우산이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그 껍떼기를 발견하고는... 이 우산에 껍데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가 나에게 매우 새롭다 (거의 몰랐던 사실이다.). 그리고, 중요한건, 그 우산은 잃어버린지 2년이 되어간다. -_-;;;


이젠 마지막... 가방안의 안쪽 주머니.

일단 안쪽주머니를 열자마자 큼직한 것. 책이 한권 있었다. 쟝쟈끄쌍페의 "뉴욕스케치" 라는 책이다. 흠.. 뉴요커들에 관한 책. 어디선가 읽었던 뉴요커에 관한 글이 잠시 떠오른다...


지난 일요일 저녁 나는 남자친구 캘빈과 함께 '메디슨 애비뉴'를 걸었다. 그날 따라 그곳은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우리는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마지막 남은 주말 몇 시간을 즐기기 위해 중심가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불현듯 소리에 뒤돌아보니 말끔한 차림의 중년 남자가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있었다.
"혹시 뒤편 하늘의 붉게 타는 저녁노을을 보셨나요?"
해가 떨어지는 순간의 저녁 노을은 환상적이었다. 한동안 취해 있는데 그 남자는
"너무 아름다워 당신들과 이 광경을 같이하고 싶었습니다."
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자리를 떴다. 아! 아름다운 뉴욕, 사랑스런 뉴요커.

난 정신연령이 어려서 그런지 그림책을 사서 모은다. 쉘실버스타인, 생떽쥐베리, 쟝쟈끄쌍페... 이 책은 얼마전에 신촌 홍익문고에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산 것인데, 사자마자 그날로 잃어버려서 찝찝하니 기분 나빠했던 그 책이다. 여기에 박혀 있었을 줄이야...

약간 휘어서 쭈글해진 그 책을 간수하고는 주머니를 계속 뒤진다. 바닥에서 보리이삭과 노랗게 잘 마른 지푸라기가 나온다. -_-;;; 이 가방을 메고 농활간 적도 없는데 왜 이런게 나오는지??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작고 예쁜 소라 껍데기도 나온다. 또, 노란 병아리 트위티 플라스틱 인형의 부러진 목의 위쪽 얼굴 조가리가 하나 나온다... 도무지 어디에서 퀴어나오게 된건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다. 보리이삭을 하나 까 입에 넣어 자근대며 꼬마 소라껍데기를 귓구멍에 넣고 트위티의 대가리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대 본다. 세상에 누가 언제 이런 행동을 해 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누가보면 정말 정신병자겠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푸하.. 길었던 긴장감을 풀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길고 긴 내 가방 주머니 탐사를 마쳤다. ^^;;;; 역시 세상은 넓은가부다.

__Enzoy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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