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뒤집기
enzoy : 자작이네-_-; : 1998/05/23 04:05머나먼 옛날 언젠가...
난 그 당시 여느 때와같이 내 방에 앉아 울티마 6을 하고 있었다. 울티마는 정말 하고 또 해도 깊이를 모를... 다시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근데 당시 내 캐릭터는 엄청난 자금난에 시달리고있었고, 약초 하나 살 돈이 없어서 마법도 제대로 못쓰고 있었다. 열 받은 나는 인간 마을을 멀리하며 동굴을 헤매고 닥치는 대로 싸움만 하고 다니며 돈을 마구 마구 모아서 상당한 돈을 모으고 말았다. 싸움을 하며 항상 약초가 모자라 마법을 맘대루 쓸 수 없었던 것이 비통했던 처라 모은 돈으로 처음 사고 싶었던 것은 바로 약초였다. 그러나 막상 약초를 마구 사다 보니 내가 그렇게도 열심히 모은 돈은 두 세 가지 약초 99개씩 사기에도 모자라는 돈이었다. 그 순간 나는 열받고 말았다. 철저한 자본주의 오락인 울티마에서 마법을 맘대루 쓰기 위해 모든 약초를 99개로 채우는 일은 보통 재력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순간 나의 맘 속에는 갈등이 생겼다. 이걸 섹터 에디트 해 버려...? 그러나 어떤 오락이든 섹터 에디트하기 시작하면 재미는 며칠의 순간, 그 후로는 게임이 영 재미없어져 버리고 만다. 울티마에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밤을 세워 고민한 난 끝끝내 참아 내어 섹터 에디트를 안 해 내고 말았는지라.
그러나 그 다음 날, 약초에 돈을 깡그리 날린 나는 다시 한 번 자금난에 부딪혔다. 어제만 해도 돈이 많았는데 하는 허탈감... 그리고 오랜만에 인간 세상에 오니 뭐 이리 사고 싶은 게 많은지... 그래서 난 섹터 에디팅을 하고 말았다.
울티마 6는 섹터에디팅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세이브 방식이 상당히 까다롭다. 세이브 디렉토리에 세이브 화일들도 캡빵 많다. 우선 울티마를 실행시키기 전에 time을 쳐서 컴퓨터 시계와 내 손목 시계를 맞춘다. 그리고선 울티마의 세계로 들어간다. 여기 저기서 어느 정도의 돈을 모으고, 돈의 저장위치를 찾기 쉽게 해 줄 보조 아이템으로 횃불도 모았다. 그러고는 주머니 안의 아이템을 정렬하여 돈이 처음에 위치하고 그 다음에 횃불, 다음에 칼 네 개를 연속으로 놓고는 세이브를 하고 도스로 나간다. 이때 시계를 힐끔 보아 시간을 기억한다. 그러곤 진수 변화 계산기로 돈의 숫자와 횃불의 숫자를 16진수로 변환해서 기억해 둔다. 섹터 에디팅에 들어가기 전에 잊기 쉬운 가장 중요한 일은 에디팅할 화일을 백업해 두는 것이다. 디렉토리를 하나 더 만들어 울티마의 세이브 디렉토리를 몽창 복사했다.
가볍게 심호흡한(?) 난 섹터 에디터를 띄웠다. 울티마의 세이브 디렉토리의 화일 중 생성 시간이 기억한 시간과 같은 놈들을 찾아내어 선택해 놓고 돈 숫자의 16진수를 찾으라고 명했다. 근데 16진수가 두 자리 이상이면 숫자를 두 자리씩 썽강댕강 잘라서 앞뒤를 디지븐 숫자를 찾아야 된다. IBM PC는 데이타 저장을 그렇게 한다나보다. 내 캐릭터의 돈이 271이었으니 16진수로는 음냐... 10F니까, 두 자리가 넘으니까 010F라고 하고 두 자리씩 썩둑 자르면 01 0F이고 디지브묜 0F 01니까 이걸 차즈라구 시켰다. 내 286이 하드를 벅벅 긁는 동안 잠시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앗! 컴퓨터가 그 숫자를 찾아냈단다! 그 숫자 뒤의 많은 16진수들을 보며 횃불의 16진수(끊겨서 디지핀)를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이 숫자가 아닌갑다. 다시 돈의 16진수(끊겨서 디지핀)를 찾으라고 하고, 찾은 숫자의 뒷부근에서 횃불 숫자(끊겨서 디지핀)를 찾고. 몇 번을 이러다가 끝내는 찾아내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니 위치를 적어 두고 계속 find를 했다. 3군데에 그러한 숫자들이 있었다. 세 군데의 16진수들을 잘 보아 가며 그 숫자들 이후에 혹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숫자 넷이 있지 않나 체크해 보았다. 즉 돈과 횃불에 이어 위치한 칼 네 개의 저장데이타를 이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위치에서 그러한 구조가 보이니 짤팅 없이 여기가 거기다 싶었다. 숫자를 적당히 크게 고치고 나가서 울티마를 해 보았다. 역시 돈이 엄청 불어 있었다. 희열과 비애를 동시에 느끼며 사고 싶은 물건부터 다 사고 보았다. 재미 들린 나는 돈 이외에 약초 같은 아이템들까지 다 고쳐서 갑부 부르주우우와 캐릭터를 만들었다. 가득찬 주머니로 울티마 세상을 나다니며 흐뭇함을 느끼다가...
아니! 이게 무언 현상이얏!!! 말도 안된다. 세이브 화일만 고쳤으니 본 게임에는 지장이 없을 텐데, 왜 아무 물건도 안 짚어지는 에러가 발생을 하는 걸까? 혹시 게임이 깨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갑부 세이브 화일들을 백업하고 이전 상태로 복구를 시켰더니 다시 게임이 재대로 되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갑부로 고쳐 놓고 하니 역시 물건이 안 집어졌다. 그 날 나는 '왜 그럴까?' 하는 생각에 밤을 세웠다. 역시 리차드 게리어트는 보통 놈이 아니어서 게임을 만들 때 나 같은 얍실얍삽한 유저들을 방지하는 기능을 넣은 것일까?
다음 날 수업 시간에도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앗차!! 하며 나의 오류를 깨달았다. 문제는 무게였다. 돈과 약초가 너무 과다량이라 내 캐릭터가 들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한 것이었고 더 이상 아무 아이템도 보태 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역시 울티마는 하나의 가상현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설정이 잘 되어 있었다. 난 다시 며칠 밤을 끙낑세며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왜 캐릭터의 운반능력을 늘일 생각을 못했는지 알 수 없다. - 멍청하니까(필자 주)) 며칠 후 난 빡이 올라서 참 황당한 생각을 해 냈다. 모든 아이템 각각의 무게가 게임 메인 화일 어디엔가 있을 테니 고걸 찾아서 모든 아이템의 무게를 다 0.1로 만들어 버리면... 그러나 내 컴퓨터 실력으로는 택도 없는 것이었다. 포기를 하려다가 혹시나 그 무게 데이타가 어느 한 곳에 몽창 몰려 있지는 않을까 하는 유일한 희망을 걸고 게임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의 세이브 데이타를 고쳐 첫 번째 물건의 아이템 넘버를 00, 그 다음은 01 이렇게 10번까지 붙여 놓고 울티마에 들어가 그 물건들의 무게를 조사해서 차례대로 적어 봤다. 차례대로 0.4 1.2 2.4 2.7 1 1.5 2.6 0.8 3.2 3.5의 무게값을 갖고 있었다. 다시 섹터 에디터를 띄우고 마지막 희망을 걸며 울티마의 모든 게임화일을 선택해 놓고 무식하게 04 12 24 27 10 15 26 08을 찾아보라고 했다. 내 컴퓨터는 286이므로 한참 걸릴 테니 난 부엌에 가서 라면을 끓였다. 그러나...찾아질 리가 없지... 역시 실패였다. 성공하길 바란 내가 무안하고 멍청히 느껴졌다. 질겅질겅 라면을 씹으며 눈물을 흘렸다. __눈물 젖은 라면을 먹어 보지 못한 자 슬픔을 논하지 말라.__ 그 후로 오랫동안 비가 왔다.
몇 주가 지났고 그 동안 울티마를 한 판도 안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난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화이터2를 하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find를 할 때 16진수 변환을 안했구나!!' 난 고냥 오락기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뛰어 와서 진수 변환을 시작했다. 그리곤 모든 화일을 tag해서 04 0C 18 1B 0A 0F 1A 08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스키틀즈를 씹으며 닭질하는 내 컴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통신으로 프로그램 다운받고 있는 순간과 비스무리 삼삼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찾았다는 메세지가 나오는 순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저 많은 16진수가 상관없는 데이타와 우연히 맞아 들었을 리는 없겠지. 난 당장 그로부터의 16진수 256개를 몽땅 01로 고쳤다. 모든 아이템의 무게가 0.1이 되도록.
울티마로 들어가 보니 별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템을 얼마든지 가져도 자유로웠고, 게다가 상상하지도 않았던 이득으로서, 들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설정이 되어 있는 대포나 기둥 같은 아이템들까지도 무게가 0.1이 되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있었다. 잠긴 문 같은 것들은 밀어버리고 들어가면 되고, 지나가기만 해도 귀찮게 말을 거는 거지나 광대 같은 놈들은 기둥이나 탁자를 밀어서 나에게 접근을 못하도록 가두어 버릴 수도 있고, 불의 장벽으로 막힌 곳도 장벽을 옆으로 치워 버리고 가면 되었다. 분수대를 뽑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가끔씩 꺼내어 놓고 소원을 빌 수도 있었다. 가장 편한 것은 대포를 넣고 다니다가 강한 적을 만났을 때 꺼내어서 쏘는 것이었다. 제대로 맞기만 하면 3방 이상 버티는 적을 못 보았다. 범선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바다가 나오면 꺼내서 타고 다니고 땅을 만나면 내려서 다시 집어넣는 것도 매우 편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곳에서는 모닥불을 갈 방향에 던져 놓고 가서 짚어서 다시 던지고 하면 횃불을 쓰지 않아도 되어 돈이 절약되었다. 정말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울티마 세계의 왕인 로드 브리티쉬를 탁자와 기둥을 밀어서 가두어 놓고 멀리서 장거리용 무기로 죽을 때까지 계속 때리던 추억도 새롭다. (로드 브리티쉬는 무기라곤 주먹밖에 없는데 한방 맞으면 누구든 죽는다. 장거리 무기는 없다. 어쨌든 끝내 로드 브리티쉬는 죽일 수가 없었다.)
헌데 나의 욕구는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였는지라. 생각해 보니 아이템의 무게 데이타가 저런 식으로 몰켜 있으면 각 무기의 공격력 데이타도 몰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래서 주머니에 모든 무기를 아이템 넘버 순으로 생성해 놓고 공격력을 차례대로 적어서 데이타를 찾아서 칼의 공격력을 FF로 바꿨다. 그러고는 칼을 들고 다니며 모든 괴물들을 단방에 쳐죽였는데, 아뿔싸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동굴에서 해골을 만나 싸우는데 해골의 일격에 내가 그냥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내 생각은 짧았던 것이었다. 칼은 나만 쓰는 무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다. 해골들도 공격력이 FF가 된 칼을 쓰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난 주방에서 흔히 주울 수 있는 식칼과 밀대의 공격력을 (이 흉기와 둔기는 공격력이 매우 낮긴 해도 아이템 분류는 무기이다.) FF로 고쳐서 썼다. 그걸 무기로 쓸 괴물들은 없을 테니까. 이제 내 캐릭터는 절대 무적이었다!
그러나 역시 며칠 하다 보니 곧 질리고 말았고 그 후로는 울티마를 안했다. 그렇다! 역시 섹터 에디팅의 최후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게임 섹터 에디팅을 추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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