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에라~! (Error)

enzoy : 자작이네-_-; : 1998/01/04 04:05
(대2때 썼던 글)

아르르르르∼∼∼

으으으... 저놈의 시계가 또 울린다. 나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고장도 안 나고 잘만 울려서 항상 나를 학교 가라고 밀어붙이는 괘종시계다. 태엽을 감아야 하는 놈인데 괘종 소리도 진짜 Hammer가 Bell을 때려서 울리는 거라서 엄청 시끄럽다. 고등학교 때 한번 짜증이 나서 벽에 던진 적도 있는데 유리만 깨지고 고장은 안 났다. 인간으로 하여금 시계에 대한 반항을 포기하게 만드는 시계다. 그러나 인간의 무한한 수면욕에는 역시 당해 낼 수 없다. 손을 뻗어 괘종을 끄는 듯 싶더니 다시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얼마를 더 잤을까... 뭔가 이상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 부시시 찌부둥하게 일어난 나는 시계를 힐끔 본다. 으윽! 시간이 어느새!! 10시에 전공 수업이 있으니 가는데 한시간 반을 치면 지금부터 세수도 못하고 튀어 나가야 한다. 분위기 살벌한 3학년 전공을 미리 듣는 것이라 지각도 절대 할 수 없다. 내가 왜 곱게 2학년 수업 안 듣고 3학년 것을 미리 들어서 이 고생을 사서할까? 작년 말, 시간표를 짤 때 그 선배님의 말도 안되는 말에 현혹된 것이 잘못이었다. 으∼ 어벌레꺼벙한 표정으로 방에서 튀어나오는 날 보고 사정 모르는 어머니는 혼자 일어났다고 장하다고 난리다. 근데 넘넘 죨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밥도 못 먹고 튀어 나가는 수밖에.

심상치 않게 졸린 나는 비몽사몽간에 봉천 사거리에 도착했다. 전철표를 사서 계단에 들어서자마자 전철이 도착했고 밀려 올라오는 인파를 겨우 헤치며 계단을 달려 내려가 간신히 전철에 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두 역을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는 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고 말았던 것이었다. 서울대 입구 역에서 사당 역으로 가서 과천선을 갈아타고 금정까지 가서 갈아타서 수원을 가야 하는데 난 반대쪽인 신도림쪽으로 가고 있었다. 에익, 별 수 없다. 이렇게 된 바에야 신도림 역까지 가서 수원행 국철을 갈아타고 가서 15분 정도 지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내려서 반대편 전철을 탄다면 시간이 오히려 2∼30분 늦어질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신도림 역에 내렸다.

신도림 역에는 수원행, 인천행, 안산행 전철이 다 서기 때문에 전철을 탈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라고 나오는 표지판에 써지는 전철의 행선지를 눈 여겨봐야 한다. Slot machine이 돌 듯 차르르르 돌던 다음 전철 표지판은 운 좋게도 "수원행"이라는 글자에서 멈추었다.

"빙고! 땄다!"

전철 기다리는 시간이 대폭 줄었으니 잘하면 겨우겨우 출석 부를 때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곧 전철이 도착하고 열리는 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주한 아침, 전철역의 분위기... 직원의 모라고 모라고 하는 역내 방송은 곧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내린 만큼 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처음에 잽싸게 들어간 나는 의외로 쉽게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나와의 경쟁에 패해 자리를 놓친 아주머니가 나를 흘긴다. 너무나도 잠이 부족했던 나는 다시 어렵지 않게 비몽사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난 이쪽으로 수원행 국철을 타고 캠퍼스에 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가끔 노량진 역에서 전철을 탔을 때는 이 코스로 가게 된다. 그럴 땐 거의 항상 잠을 잔다. 나의 목적지인 수원 역이 종착역이고 도중에 전철을 갈아 탈 일이 없기 때문이다. 희미해지는 시야가 덮이고 지하철 내의 이런 저런 소리들이 어렴풋이 들리며 점점 멀어지려 할 때 내 앞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을 제끼고 전철에서 내리는 바람에 잠시 잠에서 깨었다. 난 다음 역 안내 방송을 들으며 '이 역들을 지날 땐 항상 자고 있었으니, 일년을 넘게 다녔어도 온수니 역곡이니 하는 역 이름들이 아직도 내 귀에 생소하구나.'하는 생각을 하는가 싶다가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썰렁∼

이상하게 썰렁한 분위기에 눈을 흠칫 떴더니 전철이 텅텅 비어 있었다. 허억! 하며 벌떡 일어나 보니 종착역이라 사람들이 다 내리고 문이 닫힐 찰나였다.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깊이 잠들었던 적은 없었는데!'

문이 닫히려고 할 때 순간적인 순발력을 발휘한 나는 간발의 차이로 안전하게 밖으로 튀어 나갈 줄 알았는데 철퍼덕하며 문에 정확히 반반씩 끼고 말았다. 무지하게 아팠음이 분명한데,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끓어오르는 나의 쪽팔림은 아픔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문에 뭔가 멍청한 물건이 걸렸음을 잘 판단한 똑똑한 우리들의 전철 메카닉이 다시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자유로이 풀려 날 수가 있었다. '자아∼ 이제 캠퍼스를 향해 박차를 가해 볼까?' 하는 데 뭐가 좀 이상하다. 수원 역의 구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매우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어제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혹시 이 전철이 좀 특별한 거라서 수원 역이 종착역이 아니고 평택 쪽으로 한 두 정거장 더 온 것일까? 수원 역에서 전철 레일은 끝이 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는 등등의 냉철한 판단 추리력을 동원하며 고개를 돌려 바라본 역 이름 안내판에는 "인천"이라고 크으게 써 있었다.

으으아악!!!

핑그르르 돌며 찌그러져 내 눈에 매핑되는 인천 역의 파란 하늘이 잠시 노란 색으로 물들었다.

"이런! 이게 어찌된 거야? 분명히 수원행 전철을 탔는데? 분명히 수원행 전철이었는데? 수원까지 간 전철이 수인선을 타고 인천으로 간다는 예기는 못 들어 봤는데? 이게 어찌된 거야!!! 내가 잠시 잤기로서니 전철 요금 600원 받을 거 다 받아먹고 이런 식으로 운행해도 되는 거야?"

라고 생각하려다 보니 ??!!! 불만 없이 잘들 인천 역에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잘못되었구나 싶었다. 아! 맞다. 역 천정에 걸린 저 표지판. 저 표지판에 나오는 다음 전철 행선지 안내에는 가끔씩 사무착오로 인한 에러가 생긴다. 꽤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럴 땐 그것이 잘못되었고 실제로 이 열차는 어디 어디행 이라네∼하는 걸 역내 방송으로 말해 주곤 한다.....

"쩝..........................츳!"

어쩐지 오늘은 유별나게 졸리더라니 싶었다. 시계를 보았다. 이미 수업은 시작한지 오래다. 자자자∼ 이 난관을 어찌 타개할까? 첫번째, 다시 전철을 타고 구로 역에 가서 다시 수원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돈이 안 드는 방법이나 시간이 엄청 들어 아무리 빨리 가 봤자 수업은 2∼30분밖에 못 듣는다. 두번째, 인천->수원 직행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들 것이고 실제로 나는 이곳의 Stranger 즉 이방인... 그런 직행버스가 있기나 한지, 어디서 타는지조차 모르고 그것을 알아내는 데까지 또한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세번째......, 네번째...... 아아아아아악! 저번에 본 중간고사 채점이 다 되어서 이번 시간에 중간고사 점수를 알려 준 댔는데... 그리고 이 깐깐한 전공과목은 출석 점수가 세다는 예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게다가 나는 유일한 2학년 수강생으로서 학번으로도 밀린다. 이미 2번이나 결석을 했고 지각도 많이 했다. 저번에 출석표를 힐끔 봤는데 내 랭킹이 안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늦게 가서 10분 수업 듣고 출석체크를 한다면 교수님께 찍힐 수밖에 없다. 다른 과도 아닌 우리 과 교수님이다. 으윽... 또 내일 유기화학 제 2 중간 고사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난 여기저기 걸쳐 다니며 제대로 확실히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으으으으으윽. 갑자기 생각 안하기로 했던 모든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온 머리를 점유해 두뇌가 폭주하고 말았다. 요즘엔 참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다. 내 뜻도 아닌 이런 저런 일들... 눈까풀에 힘이 빠지며 온몸이 추욱 늘어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화앗!

눈이 화악 크게 열렸다. 하늘이 너무나도 깊게 푸르렀다. 알맞게 떠 있는 구름들은 뽀독뽀독한, 잡아서 짜면 금방 물이 좍좍 짜질 듯한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구름이다. 머리 속 이런 저런 잡동사니 생각들은 다 귓구멍으로 빠져 날아가 버렸다. 생각해 보니 5월... 5월이다. 나는 생전 와 보지도 못했던 타향 인천 복판에 서 있다. 흐음∼단순 조촐한 나의 감정은 그것만으로도 나를 두웅 띄워 주었다.

'에라∼ 바닷가에나 가 보자! 인천 친구들이 그렇게 똥물이라고 무시하던 월미도 앞바다나 가 봐야지. 출석하고 바다하고 바꿔치기다. 오후엔 무슨 수업이 있었더라? 분석화학이군. 오늘을 위해 진작에 다운하길 잘했군. 아∼∼ 걸릴 것이 없다!'

역 앞에서 버스 타고 한 큐. 찾아가는 데에 전혀 애로가 없었다. 그리고 역시 바다는 바다였다. 하늘도 공기도 맑아 나쁜 기분 털어 버리고 머리 속을 깨끗이 닦아 내기에 충분했다. 모래 대신 방파제. 멀리 쪼마낫게 떠 있는 규모 큰 배들. 20년을 도시 한가운데 나의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가끔 생기는 짜투리 시간에 올 수 있는 바다의 존재를 전혀 못 느끼고 살았다니 한심하기도 했다.


난... 바다가 너무 좋다.


하∼ 재충전을 했으니 이제 나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왁자한 동아리 방과, 수원의 전투기 소음과, 나의 후배들과, 많은 친구들과, 덤덤한 우리 집 계단 속으로... 어쩌다가 오늘 이렇게 되었나 싶기도 하다. 언제고 또 오고 싶고 짤막한 시간이 나면 또 와야지. 이제 재미 들렸으니 아무도 못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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