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방 탐사기
enzoy : 자작이네-_-; : 1999/01/23 04:05여행을 갔다가 왔던 어느 다음날...
여독에 취해 잠에 푹 빠졌다가 대낮에 잠에서 깨어... 뚱하니 있다가...
괜히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나의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러니까, 아마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옆에서 봤으면 내가 내 가방이 아닌 남의 가방을 호기심으로 뒤적거리는 듯이 느껴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방을 메고 다닌지 3년쯤 되어가는것 같다.
나는 어디엘 가나 거의 항상 가방을 메고 다니기 때문에 이 가방은 나의 하나의 인상으로 박혀가는 것 같다.. "어? 야... 왜 오늘은 가방이 없어??" 라는 말도 듣고.... -_-;;;
그런데 생각해보면...
난 지난 1년도 넘게 가방의 작은 여러 주머니들을 신경써본 일이 없는 것이다. 처음 가방을 살 때는 구석구석 주머니가 여러개 있어 맘에 든다며 사놓고는... 실상 가방을 씀에 있어서는 가장 큰 가방 공간에만 물건들을 잔뜩 넣고 다닐 뿐이지 그 살 때 좋아했던 주머니들을 쓰지를 않게된다. 마치... 가방의 앞, 옆, 옆, 뒤에 달린 주머니들은 나에게 없는 공간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자나마자 가방이 눈에 들어온 그 어느날... 문득 그 주머니들을 한번 뒤져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 가방에 달린 이런저런 주머니들을....
'과연 어떤 물건들이 들어있을까?' 하며...
일단 앞쪽의 비교적 큰 주머니.
손을 쑥 넣으니 꼬마 드라이버가 잡힌다. 연장통도 아닌데 왠 연장이 나오는건지... 그래도 이것은 드라이버가 있을리 만무한 상황에 드라이버가 필요할 때 꽤 요긴하게 몇 번 쓴 기억이 있다.
드라이버 다음엔 헤어밴드가 나온다. 보풀보풀한 털의 느낌이 부드러운 짙은 남색의 것인데... 예전에 머리가 길 적에, 갑자기 나이트에 가게 될 때를 대비해 넣어두었던 것이었다.
뒤적뒤적.. 그 다음엔 삐삐끈이라고 사료되는 무엇인가가 나온다. 악세사리 부분은 어디로 유실되었는지 플라스틱 용수철 끈 부분만 남아있다.
삐삐끈을 휴지통에 던져 넣고 또 손을 넣으니 스커시할 때 쓰려고 한 운동용 낫쏘 하드헤어밴드가 나온다. 여기 있었구나.. 이걸 어디다 둔지 몰라서 한참 다른 곳을 뒤적이던 때가 있었다.
해어밴드 밑에 또 하나의 헤어밴드가 나온다. 아까것과 마찬가지인 불시 나이트용 헤어밴드이다. 이번엔 새하얀색. 오랜 세월 주머니에 있어서 그런지 때가 좀 꼈다. 우씨.. 해어밴드가 도돼췌 몇 개인지.. 많기도 하다. 다 머리 길던 시절의 얘기지... 짧게 깎아 버린 지금으로선 아무 소용이 없다.
암튼 계속 뒤져본다. 앞주머니에선 동짜몽주머니도 아닌게 물건이 계속 나온다.
서울랜드 할인권이 나온다. 97년 봄것인가부다. =_=;;;;; 2년이 지난 티켓이라니. 97년도라면 이 가방을 산 연도가 아닌가 싶다.
이젠 더 물건이 없나 싶은 타이밍에 바닥에 깔린 나사못과 하드디스크 쩜퍼들이 사금채에 걸리듯 마구 나온다. 우어어~~ 난 왜 가방에까지 이런게 있는건지.
그리곤 껌종이가 몇개 더 나온다. -_-;;;; 이건 거의 뭐 이 주머니가 쓰레기통과 사뭇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바이다.
앞주머니의 내용은 이정도에서 그쳐졌다. 이건 미지의 세계다. 내 주머니가 아닌가보다. 언제 어디서 들어간건지 전혀 아무런 기억도 안나는 물건들로 가득차있다.
이제 앞쪽을 떠나서 옆주머니.
옆주머니의 입구는 일단 여행용 티슈 봉다리로 막혀 있었다. 이 티슈들은 색깔도 얄딱꾸리한게 꽤 오래된 세월과 관록이 느껴진다. ^^;;;; 휴지를 한장 꺼내려 하니 모두가 담합하여 뭉쳐서 나온다. 한덩어리다. 누구보고 비누라 그러면 아마 곧짝 믿어 버릴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티슈봉다리를 꺼내 돌파구를 찾고 계속 들어가보니 파란색 랜서 볼펜이 나온다. 내가 한때 좋아하며 잘 썼던 볼펜이다. 꺼내어 볼펜꽂이에 꽂은 후 계속 뒤지니 파란색 랜서가 또 나온다. -_-;;; 뒤적뒤적... 파란색 랜서가 또 나온다. 우어어~~ 도대체 몇 개가 있는건지...
난 파란색 볼팬은 잘 쓰지도 않을뿐더러 사본적도 별루 없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 이게 웨에 세 개씩이나 나올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볼펜을 쥐고 부르르 떨다가 탐색을 속행했다. 손수건이 나온다. 파란색 손수건. 내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척 깔끔떨던 때가 있었던가부다. (확실히 그런 때가 있었는지 기억은 잘 안난다.)
원채 작은 옆주머니에는 이제 바닥이 드러난다. 주머니 바닥에서 여자애들이 쓰는 머리 똑딱핀이 나온다.. -_- 이건 또 뭔지... 웨에 여기 들어 있는 것인지...
이제 그 반대쪽 옆 주머니.
일단 처음에 담배가 나온다.. 이건 도데체 얼마나 묶은 담배일지... 비에 맞고 마르고를 반복해서인지 담배 전체가 노래졌다. 한대 태워볼까하다가 인체에 유독한 가스가 나올 것만 같은 형상에 쫄아서 그만둔다.
뒤적뒤적... 담배 바로 아래쪽에서는 쪽지가 나온다. 비에 젖어서 잘 안보이는데, 대강 읽어보자면... 연락달라는 간단한 문장이 적힌 삐삐 번호다. 이런거 받은적 내 기억엔 전혀 없다. -_-;;;; 남자일지 여자일지조차도 전혀 모르겠다... '혹시 누가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 옆에 서있다가 나에게 반해서 넣고 간건가?'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본다. 푸하하 이런 궁상맞은 상상이라니... 관두자.
라고 하면서도 전화로 삐삐를 쳐보고 있는 나 (이.. 이건.. 궁상의 극치로군...) 근데.. 수화기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여인의 음성...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우허허. 뻔히 결번일 것을 예상하고 걍 재미삼아 눌러봤다고 나 자신에게 우겨본다.
뒤적뒤적 계속 주머니를 뒤진다. 바닥에서는 팬시우산의 껍떼기가 나온다. 언젠가 선물받았던 아주 예쁜 우산이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그 껍떼기를 발견하고는... 이 우산에 껍데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가 나에게 매우 새롭다 (거의 몰랐던 사실이다.). 그리고, 중요한건, 그 우산은 잃어버린지 2년이 되어간다. -_-;;;
이젠 마지막... 가방안의 안쪽 주머니.
일단 안쪽주머니를 열자마자 큼직한 것. 책이 한권 있었다. 쟝쟈끄쌍페의 "뉴욕스케치" 라는 책이다. 흠.. 뉴요커들에 관한 책. 어디선가 읽었던 뉴요커에 관한 글이 잠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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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신연령이 어려서 그런지 그림책을 사서 모은다. 쉘실버스타인, 생떽쥐베리, 쟝쟈끄쌍페... 이 책은 얼마전에 신촌 홍익문고에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산 것인데, 사자마자 그날로 잃어버려서 찝찝하니 기분 나빠했던 그 책이다. 여기에 박혀 있었을 줄이야...
약간 휘어서 쭈글해진 그 책을 간수하고는 주머니를 계속 뒤진다. 바닥에서 보리이삭과 노랗게 잘 마른 지푸라기가 나온다. -_-;;; 이 가방을 메고 농활간 적도 없는데 왜 이런게 나오는지??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작고 예쁜 소라 껍데기도 나온다. 또, 노란 병아리 트위티 플라스틱 인형의 부러진 목의 위쪽 얼굴 조가리가 하나 나온다... 도무지 어디에서 퀴어나오게 된건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다. 보리이삭을 하나 까 입에 넣어 자근대며 꼬마 소라껍데기를 귓구멍에 넣고 트위티의 대가리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대 본다. 세상에 누가 언제 이런 행동을 해 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누가보면 정말 정신병자겠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푸하.. 길었던 긴장감을 풀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길고 긴 내 가방 주머니 탐사를 마쳤다. ^^;;;; 역시 세상은 넓은가부다.
__Enzoy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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