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무림 #2 강변연가

enzoy : 쇠털나날/FunSeek - 웃음거리 : 1999/02/12 17:13

가차유머가 유행하던 시절에 한가닥 하던 유머글. 신철수님의 집필. 수원 서쪽에 살아본 사람들에게 공감탱천!

부부무림 천리추향(千理追香)

제 2 장 - 강변연가

벌벌검객 신철수는 달을 등지고 잠실벌에 펼쳐진 천하무공대회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전대에 정.사 전 무림인과 세외기인들이 모여 절예를 겨룬 거대한 비무장들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윤곽을 감춘 채 흩어져 있었다. 그는 달려드는 모기를 쫓기 위해 모닥불앞에 앉아 천천히 끽연공을 시전하였다. 가슴에 뭉쳐친 기가 혈류를 타고 흐르며 온 전신 경락을 따라 기분좋게 퍼져갔다. 방원 삼장에 걸쳐 그가 토연한 연무로 뿌옇게 흐려진 막이 형성되었다. 철수는 은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屯村文家壯(둔촌문가장)을 출입하는 길이 반드시 여기만은 아니지만 이 언덕을 꼭 지나리라고 생각했다.

문득 오늘 있었던 일들이 스쳐갔다. 세 사람은 화호일미가 남겨준 건디선을 마신 후 간단한 운공요상으로 내상을 어느정도나마 치유할 수 있었다. 그는 사형제와 바삐 이별하고 무공도장 동기인 鬼影子(귀영자) 김병철을 찾았다. 그는 공주무림 출신으로 평소에 공주오미를 흡모하여 침을 튀기며 자랑을 일삼았었다. 철수는 미친듯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도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지만 무작정 둔촌문가장의 문을 두들겼다.

비록 은경과 외숙부 覇力巨刀(패력거도) 문인준은 만나지 못하였으나 의아해하는 외숙모와 귀여운 사촌동생 서영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14세의 발랄한 소녀로서 琵琶神女(비파신녀) 정명화의 기명제자로 입문하여 벌써 사부의 성명절기인 四絃砦路 絃樂獨奏(사현채로 현악독주)를 전수받는 중이었다. 기분좋게 자신을 잘 따르는 서영의 배웅을 받으며 문가장의 현문을 나서면서도 알 수 없는 갈증은 가시지 않았었다.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철수는 가지고 있던 건량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운기조식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보법의 무게와 강약에서 무공을 익힌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바라보았다. 그녀였다.

화호일미는 뜻밖에 벌벌검객을 만나자 반갑기도 하였고 궁금하기도 하였다.

"철수공자, 당신이군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보다... ... 알고흘은 완전히 해독했나요?"

철수는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그는 수원성에서 잠실벌로 오는 관도상에서 그리고 밤새워서 수없이 이 순간을 대비해 멋있는 대사를 생각해 놓았었다. 이 질문은 예상문제 2번이었다. 그러나... ...

"은경소저!! 아름다운 밤입니다. 저 달은 무림의 시름조차도 덮어 주는군요."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도 떨린 나머지 엉뚱한 대사가 나간 것이다. 그녀는 그의 황당한 말에 의아해하며 하늘을 보고 다시 그를 보았다.

"하 하... ... 어젯밤이 그랬다는 것이오. 알고흘은 이미 깨-끗히 해독되었소이다. 소저께서 남겨주신 건디선 덕분이오. 감사드리겠소."

당황한듯 했던 은경이 푸훗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감사는요... ... . 내상이 다 치유되었다니 다행이어요. 합마삼발식은 우리도 처음 대하는 초절한 무공이었어요. 세분 공자님께 결례를 범해서 주중난화도 크게 후회하였답니다. 용서해주세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그녀는 주취공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어요."

"용서고 말고가 있습니까? 비무중에 그 정도의 내상이야 오히려 가벼운 것이지요. 잔에는 눈이 없다고 하지 않소이까. 하하핫... ... ."

벌벌검객은 아직도 쑤시는 머리를 흔들며 호탕하게 웃었고 은경도 그의 호방한 웃음에 미소로 답하였다.

서울과 춘천성을 잇는 관도, 가을색으로 물든 경춘가도에 두필의 준마가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삼악산과 봉화산 사이의 협곡을 달리고 있었고 깊은 절벽 아래에는 북한강이 도도하게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봉화산의 구곡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북한강에 유입되는 지점에 한면이 절벽에 노출된 채 절벽에 걸려있는 객점이 보이고 그아래로 30년전 한 기인이 설치했다는 진도가 협곡을 가로질러 아스라이 걸려있었다.

일남일녀는 객점 앞에 말을 세우고 정면에 높이 걸린 편액을 올려다 보았다. '江村客店(강촌객점)'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한 가운데 웅혼함이 배어있는 필체였다. 그들 남녀가 입구에 들어서자 점소이가 재빨리 이들을 창가 전망이 좋은 장소로 안내하였다.

"우선 합마소주(합마는 두꺼비) 한동이하고 간단히 요기할 것으로 주게."

벌벌검객은 맞은편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그윽하게 앉아있는 화호일미를 응시하다가, 며칠 전 종로에서의 비무가 떠올라 빙그레 미소가 피어 올랐다.

철수는 은경이 공주오미중 일인인 雲岳仙子(운악선자) 오연희와 만나는 장소에 극구 동행했었다. 그녀는 고고한 인상이었으나 의외로 붙임성이 있었고 뜻이 잘 통했다.

연희가 만류하였으나 발끈한 은경은 옥용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채 거침이 없었다.

"공자께서 소녀들을 보호하시겠다는데, 소녀는 공자의 보호를 받아도 되는지 시험해 보아야겠어요. 조심하세욧-!"

화호일미는 벌벌검객이 미쳐 수비를 갖추기도 전에 女人宮(여인궁)의 극음한공인 寨藜寶氣 十三秒(채려보기 십삼초)를 시전하고 있었다. 원래 여인궁에서 창안 발전시킨 이 초식에는 치켜뜨기의 전동작으로 서서이 기를 모아야 했지만 그녀는 벌벌검객이 끽연공의 강막으로 파해할 것이 염려되어 순간적인 내공의 격발로 전동작을 생략한 채 격출한 것이었다. 갑자기 맹렬한 한기가 철수의 전신을 파고 들었다. 그는 급히 기를 운용하여 대항하려 하였으나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이빨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은경이 견식을 넓히기 위하여 연희와 북한강 일대를 유람하려는데 성급한 철수가 자신이 보호자로 동행하겠다고 계속 우기다가 변을 당하는 것이었다. 은경은 더욱 내공을 끌어 올려 공세를 강화했다. 철수는 도저히 맞대응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신의 기를 태양혈에 집중시키며 그녀의 공세가 완화되기만을 노렸다. 이윽고 차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화호일미는 계속적인 내공의 발산으로 전동작을 생략한 공력부담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미간이 떨리며 기혈이 한차례 역류하여 발산되던 한기가 잠깐 약해졌다. 찰라를 놓치지 않고 벌벌검객은 태양혈의 기를 발산시키며 출수하였다.

"眼球回轉 九百 閼-皮-陰 (안구회전 구백 알-피-음)."

화호일미는 복부를 움켜쥐고 쓰러졌고 삼장거리에 있던 운악선자마저 기해혈이 진탕되어 파소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 은경은 간신히 눈을 뜨고 철수에게 물었다.

"철수공자, 기괴한 절초였어요. 소녀가 무슨 무공에 당한거죠?"

철수는 쓰러진 그녀를 안고 미안해하며 대답했다.

"復讐血客(복수혈객)의 梅直 亞二笑(매직 아이소) 이초식이오."

강호유람에 나서는 날, 눈치 빠른 운악선자는 약속장소인 성북객잔으로 사람을 보내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음을 통보하였고 철수는 쾌재를 부르며 둘이만 출발하였던 것이었다.

"무얼 그리 생각하죠?"

은경이 철수의 표정에서 그때의 패배를 떠올리며 새침하게 물었다. 철수는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오. 그런데 편액의 필자가 궁금하지 않소?"

화호일미는 곱게 눈을 흘기며 쏘아 붙였다.

"당신의 그 眼武神功(안무신공)으로 단번에 간파하셨나요?"

벌벌검객은 웃음이외엔 다른 답변이 없었다.

벌벌검객과 화호일미는 어느새 진도를 지나 삼악산 초입에 도달해 있었다. 삼악산으로 오르는 계곡에는 두세개의 주점이 있었고 그 앞에는 '無不通知(무불통지)'라고 쓴 깃발을 세운 노인이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두 사람은 노인을 지나쳐 계곡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좋-은 그림이다. 우리 할망구도 저 때는 좋-았는데... ... . 샥시! 미래를 한번 보시구랴."

언제 깨어났는지 노인은 두 사람을 보고 말을 붙였다. 화호일미는 일단은 자신이 이쁘다는 이야기를 듣자 걸음을 멈추고 돌아 보았다.

"색시 이리와서 앉아. 어구- 신랑도 아주 훠-遁 하게 생겼네. 내가 이래뵈도 못 맞추는게 없는 사람이야."

히벌쩍 웃으며 노인에게 다가가던 철수는 은경의 날카로운 금나수법에 완맥을 잡힌 채 질질 끌려서 계곡으로 올라갔다.

"오백년전 도를 닦던 고인이 여기서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하오. 과연 절경이 아니오?"

등선폭포의 기암사이를 뚫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벌벌검객이 말을 꺼냈다. 샐쭉했던 화호일미였지만 폭포와 어울어진 단풍과 기암괴석의 오묘한 조화에 감탄하여 그의 옆에 앉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철수는 문득 자신의 손목을 잡아끌던 손의 감촉이 되살아나 흐뭇해졌다. 그리곤 그 손을 더 잡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소저, 아까 금나수법이 대단하던데 본격적으로 한번 겨루어 봅시다. 본 공자도 금나수법에는 뒤지지 않는 사람이오."

은경은 때아닌 무공 이야기에 의아해하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의 속셈을 알겠다는 듯 희미하게 고소를 치며 옥소를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비무의 법칙은 간단하여 손을 마주 잡고 서로 엄지손가락을 세워 상대방의 엄지를 잡고 손등을 치는 것이다.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유연하였다. 그러나 엄지의 움직임은 수많은 변초로 현란하기 까지 하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다시 진도 위에서 산과 어울어진 강물에 반쯤 걸린 석양을 감상하고 있었다. 화호일미 곁에 붙어선 벌벌검객의 왼손등은 시뻘겋게 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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